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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의 시네마TalkTalk] 판타지 혹은 사랑 이야기
늑대 소년(2012), 조성희 감독
2012년 12월 03일 (월) 15:38:48 김병철(영화) 교수 deupress@deu.ac.kr

   

 일반적으로 관객들은 특정한 기대를 갖고 극장을 찾기 마련이다. 복잡한 세상사를 모두 잊을 수 있도록 마음껏 웃거나 아니면 펑펑 울기를 바라기도 하고, 때로는 특정한 유형의 이야기나 볼거리를 원하기도 한다. 영화가 이런 관객들의 기대에 적절하게 부응하는 경우 흥행의 성공으로 이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많은 경우에 있어서 흥행의 성공이란 작품 그 자체의 완성도나 예술적 성취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화가 관객들이 원하는 것을 얼마나 적절하게 제공하는가가 흥행의 관건이 되는 것이다. 이런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영화들은 과거의 성공사례들을 참조한다. 특정한 이야기의 유형을 반복하거나 캐릭터들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으며, 특정 장면이나 볼거리들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다. 이미 성공을 거둔 과거의 사례들을 반복하는 형태들을 우리는 장르라고 부른다. 이러한 장르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나, 영화를 보는 사람들 모두에게 대단히 유용한 장치가 된다.
 판타지 장르란 원래 문학에서 출발한 것으로서 환상적인 이야기나 초자연적인 세계를 다루는 이야기를 말한다. 현실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마법처럼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영화라는 매체와는 탁월한 궁합을 보여준다고도 볼 수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영화가 탄생한 무렵부터 판타지는 꾸준히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판타지 장르는 한국에서 그리 인기가 있는 편이 아니다. 외국에서 대성공을 거둔 판타지 영화들도 한국에서는 그리 큰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는 최근에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유구한 역사를 지닌 전통에 해당한다. 한국에서는 그야말로 `리얼리즘'의 전통이 강세를 보여 왔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현상이 너무나 많은 파란을 겪어왔던 한국 근현대사의 영향 때문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지극히 현실적인 사상인 유교의 영향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 정확한 원인을 명확하게 규정하기는 힘들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장르라는 틀로 이 현상을 바라보자면 한국의 관객들은 현실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특별한 현상이나 존재, 혹은 그러한 것들에 기반한 세계를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한국의 영화제작자들은 판타지 장르에 해당하는 영화들을 제작하려는 시도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었다.(1,300만 명의 관객이 본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괴수영화라는 특별한 하위 장르에 속하며, 이 경우에도 명백하게 현실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한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판타지 영화와는 거리가 있는 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조성희 감독의 〈늑대 소년〉은 특별하게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나 세계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판타지 장르는 많은 제작비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늑대 소년〉은 한국영화의 평균 제작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예산 영화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늑대 소년〉은 현재 6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한국영화 멜로드라마 흥행 신기록을 수립 중이라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만한 것은 분노하면 늑대로 변하는 정체불명의 소년(이러한 설정은 전형적인 늑대인간 장르의 설정에 해당)이 등장하는 영화임에도 이 영화가 멜로드라마로 분류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이 등장하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로맨스 영화로 분류되는 것을 연상시킨다. 결국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호소하는 지점은 늑대인간이라는 초현실적인 존재가 보여주는 놀라운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그가 보여주는 지고지순한 사랑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여성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이상적인 연인의 모습을 발견하고, 남성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모든 조건들을 뛰어넘는 헌신적인 사랑의 모습을 발견하고 만족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단편영화 〈남매의 집〉에서부터 현실적 세계와 초현실적 세계를 탁월하게 혼합하는 솜씨를 보인 조성희 감독은 현실 속에서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는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초현실적인 설정으로 풀어냄으로써 관객들의 기대를 만족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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