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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톡톡] 화려함으로 포장된 몰락
2013년 06월 10일 (월) 16:55:23 김병철(영화) 교수 deupress@deu.ac.kr

위대한 개츠비(2013),  바즈 루어만 감독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 근대문학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대공황이 밀어닥치기 이전 유례없는 호황에 흥청망청 거리던 미국 사회의 단면을 포착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신의 꿈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한 남자의 맹목적인 사랑과 삶을 통해서 아메리칸 드림의 허실을 날카롭게 묘사한 고전 중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1977년 잭 클레이튼 감독에 의해서 로버트 레드포드와 미아 패로우 주연으로 이미 영화화되기도 했었다. 2013년 호주 출신의 바즈 루어만 감독은 이 고전을 다시 영화화했다. 우리는 이 작품을 지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바즈 루어만 감독은 데뷔작인 〈댄싱 히어로(1992)〉에서부터 출세작인 〈로미오와 줄리엣(1996)〉을 거쳐서 〈물랑 루즈(2001)〉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음악과 현란한 볼거리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시청각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위대한 개츠비』를 영화화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우려와 기대가 공존했다. 즉, 이미 화석화되고 있는 고전을 새롭게 되살려 생기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껍데기만 화려한 또 하나의 클리셰 덩어리들을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동시에 나왔던 것이다. 공개가 된 이후 영화 〈위대한 개츠비〉가 받은 평가 역시 이런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바즈 루어만 감독은 소설 『위대한 개츠비』가 갖는 사회적 함의를 최소화하면서 평생의 연인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로 재해석한 것이다. 이는 이미 그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한 번 시도한 경험이 있었던 방식이기도 하다.
   
바즈 루어만 감독의 손에 의해 고전은 현대적인 모양새를 갖추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복합적인 의미는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라스베이거스에서 공연되는 화려한 쇼를 연상시키는 대저택에서의 화려한 파티, 제이 지(Jay-Z)를 포함한 인기 뮤지션들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음악들이 결합되고, 3D 입체효과까지 결합된 이 작품에서 고전의 향취와 의미를 찾아내기는 힘들다. 대신 현대의 관객들이 1시간 반 내지는 2시간 동안의 여흥을 위해 바라는 모든 것들을 담아내고자한 노력은 곳곳에서 엿보인다. 사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란 원작 소설을 모르는 관객들이 보았을 때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자명하다. 화려함 속에 숨어있는 한 남자의 순애보. 하지만 그것이 이 작품을 위대한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았던 그러한 힘일까? 그리고 그러한 화려함과 대비되는 순애보가 2013년에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매력이 될 수 있을까?
   
 〈위대한 개츠비〉란 작품을 보고나면(소설이건 영화이건) 드는 질문은 한 가지이다. 왜 개츠비는 위대한가? 한 때 가졌던 사랑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돌진한 한 남자를 왜 위대하다고 부를까? 이 작품의 배경이 되던 풍요의 1920년대에 만연했던 물질적 풍요와 화려함 속에서 그가 가졌던 꿈은 결국 몰락할 수밖에 없는 허무한 꿈에 불과하다. 무엇이든 꿈꿀 수 있고, 그 꿈은 결국 이루어질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이 그 화려함의 외관이라면, 그 화려함 속에서 외골수로 등장하는 몰락할 수밖에 없는 개츠비의 꿈은 아메리칸 드림의 이면이 된다. 풍요로운 외면과 공허한 그래서 허무할 수밖에 없는 내면의 대립은 〈위대한 개츠비〉를 형성하는 두 축이다. 결국은 악몽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위대한 꿈. 바즈 루어만 감독은 이러한 꿈의 대립이 가져오는 몰락의 서사를 현대적 의미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로 전환시킨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화려함과 대비되는 개츠비의 꿈과 사랑이 의미가 있음을 역설한다. 하지만 개츠비의 꿈이 보여주는 외관과 이면의 대립이 영화가 보여주는 화려함 속에서 사라지고 단순한 사랑 이야기로 변모할 때, 이 역설적인 혹은 문자 그대로의 위대함은 여전히 그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몰락을 내포한 화려함이라기 보다는 몰락에 대한 화려한 포장으로 그치고 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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