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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의 시네마 Talk Talk] 역사 해석의 한 모습
2014년 06월 03일 (화) 18:09:06 김병철(영화) 교수 deupress@deu.ac.kr

 

   
이재규 감독의 〈역린〉은 1777년(정유년)에 실제 있었던 정조의 암살시도 사건인 정유역변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개봉 전에서부터 당대 최고 스타 현빈의 제대 복귀작이라는 점, 수많은 스타들이 등장한다는 점, 잇달아 개봉하는 등에서 많은 화제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거대한 규모와 화려한 볼거리로 무장한 듯한 이 작품은 일정 수준의 관객을 끌어 모으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를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개봉 첫 주에 극장으로 몰린 관객들의 입소문이 생각보다 좋지 못한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평가받고 있다.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이끈 성군으로 평가받는 정조는 뒤주에 갇혀서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점과 극심한 당쟁의 한 가운데에서 끝없는 암살의 위협을 받으며 살았다는 점에서 역사를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가 즐겨 선택하는 임금이다. 탁월한 업적과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야했던 극적인 개인사가 충돌하며 빚어내는 갈등과 아이러니는 수많은 작가들과 감독들이 욕심을 낼만한 소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이 현실화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정유역변은 그 사건이 가지는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건이 너무나 허술하고 미미했다는 점에서 그 자체가 단독으로 다뤄진 적이 없었다. 바로 이 점이 〈역린〉의 출발점이 된다.
 실제의 사건을 영화화하는 것은 단순히 그 사건을 재현하는 일에 그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과거의 역사를 다루는 사극의 경우는 대단한 볼거리를 만들어 내거나 새로운 해석을 첨가함으로써 현실을 재조명하려는 목적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역린〉 역시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에 대해 쏟아지는 불만 중의 상당수는 극적인 재미가 부족하고, 과도하게 복잡하고 산만하다는 점에 쏠려있다. 즉, 관객들이 불만을 표하는 이 부분은 이 작품이 취하고 있는 해석이 갖는 새로움이 빚어낸 일종의 부작용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정조의 암살시도 사건을 다루면서도 상당히 많은 인물들에 고루 관심을 보인다. 반대파의 수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정순황후(한지민),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김성령), 정조의 가장 가까운 인물인 내시 갑수(정재영), 조선 제일의 암살자 을수(조정석), 암살자 집단의 우두머리 광백(조재현), 암살자와 사랑에 빠지는 궁녀(정은채)이 바로 그들이다. 이 사건을 할리우드식의 긴박감 넘치는 스릴러로 만들고 싶었다면 정조와 암살자에 집중하는 단선적인 이야기로 만들어야했고, 정조를 둘러싼 복잡한 정치극으로 풀어가고자 했다면 정조와 정순황후를 둘러싼 암중의 투쟁을 중심으로 그려야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 사건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 각자의 사연에 주목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이러한 선택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영화의 극적인 재미를 떨어뜨리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이 가져온 긍정적인 측면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많은 사람들을 보여주겠다는 것은 그 사건을 단순한 선악의 틀로 바라보고 일방적인 유죄선언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이념적 지향에 따라 때로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기도 하는 그들의 입장이 갖는 미묘함은 과도하게 신중하여 마치 소심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정조의 선택에 무게를 싫어준다. 자신의 목숨까지 노리는 자신의 적들을 단순히 처단해야할 악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면서 문제를 해결해야할 공존의 대상으로 보는 영화 속 정조의 입장은 그렇기 때문에 답답하면서도 한없이 미더워 보인다. 영화 속에 나오는 중용 23장에 나오는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는 말은 곧 영화 속 정조의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 되며, 이 영화가 취하고 입는 해석의 입장이 된다. 단순한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태도, 그 태도를 분명히 밝혔다는 점에서 〈역린〉의 역사 해석은 혼란한 시대에 가치를 지닐 수 있다. 따라서 이를 절반의 성공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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