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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의 시네마 Talk Talk]별과 별 사이
2014년 12월 02일 (화) 16:01:30 김병철(영화) 교수 deupress@deu.ac.kr

 

SF 장르는 공상과학 장르라고 불린다. SF란 science fiction의 줄임말이기 때문에 SF장르란 말 안에는 과학이라는 현실의 학문 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분명한 전제가 깔려있다. 하지만 공상과학이라는 번역어 안에는 과학이라는 실제의 학문이 아닌 순수한 상상력이라는 또 하나의 기반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공상과 과학, 엄밀한 수식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현실의 학문과 아무런 제약 없는 순수한 상상의 결합된 장르라고 할 수 있는 SF는 그래서 극단의 두 방향으로 나뉘는 것이 보통이다. 과학적 사실이나 법칙보다 무게를 두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하드 SF와 과학보다는 인문학적 사고에 기반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소프트 SF가 이에 해당한다. SF란 장르를 단순히 이 두 가지의 틀로 모두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지만 과학적 사실과 법칙이 차지하는 역할의 중요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하드·소프트 SF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구분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SF 소설이나 영화가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을 허황된 것으로 여기는 입장이 크다고도 볼 수 있다. 즉 공상과학 소설 혹은 공상과학 영화라는 우리의 말 안에는 그것이 실제의 학문인 과학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저 허황된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라는 평가가 이미 들어가 있는 것이다. 상상력과 공상보다는 실용적 지식을 더 높이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관습이 이미 들어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경우에 SF와 판타지라는 근본적인 차이점을 지닌 장르가 혼합되어 쓰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맥락에서 SF의 걸작이라고 평가받는 많은 작품들 역시 단순한 오락물이나 의미 없는 시간낭비로 간주되곤 한다. 해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높은 평가를 받은 수많은 SF의 걸작들이 국내에서는 생각만큼의 인기와 주목을 끌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무서운 속도로 관객들의 끌어 모으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가 거둔 예외적인 성공도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각본을 맡은 놀란 감독의 동생인 조나단 놀란이 4년간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이나 저명한 이론물리학자인 킵손이 영화 전체의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시나리오와 영화를 감수했다는 사실은 이 영화가 단순히 상상력과 공상에 의존한 영화가 아니라 엄밀한 과학적 전제들과 이론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을 강조하게 만든다. 일종의 하드 SF라고도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중력, 블랙홀, 상대성이론 등 과학 다큐멘터리의 소재로 어울릴법한 전제들로부터 이야기를 끌어내고 이를 시각화시킨다.
 영화는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지구가 오래지 않아 인류가 살 수 없는 곳으로 바뀌는 종말에 직면해있다는 전제로 출발한다. SF장르의 익숙한 설정이지만 이 영화는 종말로부터의 탈출을 과학적 전제들로부터 출발하여 하나하나 정밀하게 제시한다. NASA는 인류가 옮겨가서 살 수 있는 지구의 대안을 찾으려는 마지막 시도를 감행하고 그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여러 난관들을 하나하나씩 돌파해나간다. 이 이야기에는 어떤 새로운 면도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거는 위험한 시도에 도전하는 아버지, 순수한 과학적 열정에 불타는 과학자 등 수 많은 영화와 소설 등에서 반복적으로 그려졌던 인물들이 다시 한 번 인류의 생존을 위해 어둡고 차가운 우주 공간으로 나간다. 가족 특히 사랑하는 딸을 위해 목숨을 건다는 지극히 상투적인 내러티브는 그것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하드 SF의 과학적 이론들과 결합하여 예상치 않은 설득력을 지닌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SF 영화에서는 순수한 상상력과 공상의 산물이었던 시각적 이미지들은 마치 과학 다큐멘터리의 그것과도 같은 엄밀함과 권위를 부여받는다. 즉, 〈인터스텔라〉는 가장 상투적인 이야기와 가장 혁신적인 이미지의 기묘한 결합이라는 결과물로 볼 수 있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상대적으로 냉대 받았던 SF장르가 이론물리학의 권위를 부여받음으로써 화려하게 재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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