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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의 시네마 Talk Talk]시간의 벽을 넘어
2015년 11월 10일 (화) 11:00:13 김병철(영화) 교수 deupress@deu.ac.kr
   

 2014년 5월 16일 서초동 주택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성공한 변호사이자 한 가장의 가장으로 안락한 생활을 누리던 고동호(손현주)는 이 사건으로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진 삶을 살게 된다. 2014년의 그날과 마찬가지로 태양의 이상폭발이 일어나던 2015년 5월 16일 고동호는 갑자기 아내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고동호는 처음에는 누군가의 고약한 장난이라 생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신이 아내가 살아있던 시간, 즉 과거와 연결되어있으며 아내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과거와 연결된 전화에 의지하여 아내를 살리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김봉주 감독의 영화 「더 폰」은 시간의 벽을 넘어서 과거와 연결된다는 익숙한 형태의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김하늘, 유지태 주연의 「동감」이나 이정재, 전지현 주연의 「시월애」의 경우처럼 시간을 초월한 사랑을 그리는 경우도 있고, 할리우드 영화 「프리퀀시」의 경우처럼 아버지의 죽음을 막기 위한 분투를 그린 영화도 있다. 이러한 형태의 이야기 구조는 시간의 연결이라는 하나의 장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소설, 영화 등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 세 편의 영화가 모두 2000년에 제작되었다는 사실은 단순히 우연이라고 간주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것은 단지 1년의 시간이 지났을 뿐이지만 표기상으로는 천년의 시간이 지난 것처럼 보인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이라는 말에는 시간의 벽이 만들어내는 두려움과 설렘이 담겨있다. 시간의 벽을 넘어서는 인연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들의 출발은 아마도 그러한 맥락에서부터였을 것이다. 하지만 2015년에 만들어진 「더 폰」에는 이러한 시간적 맥락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러한 유형의 영화와 소설 등에서 반복되어온 관습들을 차용함으로써 만들어내는 장르적 쾌감이 그 핵심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폰」은 태양의 이상 활동으로 이미 사망한 자신의 가족과 통신으로 연결되고, 그 과거를 되돌리기 위해 미지의 살인범과 맞서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할리우드 영화 「프리퀀시」와 동일한 이야기 틀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의 벽을 넘어 과거를 되돌리려는 노력을 한다는 설정은 거의 장르적 내러티브 관습에 가깝다는 점에서 이러한 유사성은 표절이라기보다는 장르의 한국적 변용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에서 주목할 것은 이야기의 틀이라기보다는 관습적인 이야기의 틀을 어떻게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에 맞도록 변주했으며, 이를 통해서 어떤 영화적 쾌감을 만들고 있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장르적 변용이라는 관점에서 이 영화를 바라볼 때 가장 주목해야할 점은 가정의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하던 가장이 자신의 잘못으로 그 가정이 깨어지고 난 후 그것을 되돌리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살인범을 그의 집으로 불러들인 것도 그였고, 그의 아내가 그를 애타게 찾을 때에도 그는 회식에 참여하느라 아내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는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었지만 그가 의식적으로 노력했더라면 충분히 그의 아내를 지킬 수 있었다. 이런 죄의식이 고동호를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가정을 지키고 가정 내 자신의 자리를 되찾으려는 40대 가장의 분투는 장르영화적인 클리쉐인 동시에 한국사회의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함으로써 울림을 만들어내는 효과적인 장치로 작동한다. 살인범의 뒤를 쫓다가 오히려 위험에 빠지게 되는 과정이 만들어내는 서스펜스는 장르영화적인 쾌감을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이 시대의 가장들이 겪어야하는 현실의 영화적 변용인 것이다.
 「더 폰」은 살인사건의 원인이 되는 사건들, 시간의 벽을 넘나드는 장치들, 다양한 인물들 사이의 관계들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정교함이 떨어지고 약간의 구멍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르의 한국적 변용이라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김병철(영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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